기본 소개
전략 RPG의 요소가 조합된 역사 무협 게임입니다. 게임 내에서는 다양한 지역과 특색 있는 몬스터들(황건장수, 동탁호위병사 등)을
상대로 캐릭터 육성을 진행하게 되는데, 육성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국가의 캐릭터를 상대로 PVP가 허용됩니다.
이는 각 국가 간의 상호 대립적인 관계를 모티브로 한 게임의 스토리를 적용하여 보다 긴장감 있는 게임의 진행을 위한 대표적인 요소 입니다.
등장하는 영웅은 유비, 관우, 장비, 황충, 조조, 하후돈, 하후연, 전위, 곽가, 순욱, 손책, 손권, 대교, 주유 등이 있으며,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각 인물의 원화를 기반으로 하여,
각종 고증 자료를 수집하여 보다 자세하고 정확한 실제 영웅의 특성을 극대화하여 표현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현재 온라인삼국지Ⅱ에서는 위, 촉, 오 삼국이 정립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세 나라
간의 대결구도를 기반해, 게임 이용자들은 위, 촉, 오 중 한 나라를 선택하게 되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장수를 선택하여 자신의 캐릭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군웅할거는 자신의 국가에 위치하는 성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국가와 자유로운 PVP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며 공성병기의 등장 및 보급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공성 및 야전 시 전략적인 요소를 반영합니다. 기존의 단순한 물량 및 소모전으로 일관된 공성 시스템에서 탈피하여,
공성병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앞으로 나아가 전투를 할 것인가,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적의 퇴각을 야기할 것인가 하는 판단은 게임을
하는 이용자의 의지에 따라서 바뀌며, 그에 따른 결과 또한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오직 군주 캐릭터(유비, 조조)가 창설할 수 있으며, 군을 창설한 군주 캐릭터의 등급에 따라서 작위를 수여할 수 있고,
작위를 수여 받은 캐릭터는 별도의 능력치 상승 효과를 부여 받습니다.
군웅할거(공성전)에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소속 군은 필요하며, 군 창설을 통해서 자국 유저와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커뮤니티의
역할 및 타 군단과의 동맹을 통해서 타 국과의 전쟁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것도 가능합니다.
400년의 번영을 자랑하던 한왕조는 십상시라 불리는 10명에 환관들의 전횡에 정치가 극도로 부패해 있었고,
외척과 환관들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마침내 쇠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지방 호족들 역시 왕권의 통치를 엿보기에 여념이 없었고, 변경 지역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비
부담을 모두 농민들에게 부담시키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으니 이에 농민층은 봉기하여 귀족과 지주 밑에
서 일하는 신세로 전락하거나 아예 유랑민 혹은 도적의 무리가 되어 버렸다.
농민들은 크게 좌절하고 한 왕조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기 태평교를 중심으로 한 신흥 종교 집단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결국 그것은 새로운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전조(前兆)가 되었다.
영웅들의 의거 (義擧)
위 (魏) - 조조의 진격
한나라의 상국이며 명망이 높던 조참(曹參)의 24대손으로 아버지 조숭(曹嵩)은 원래 하후씨(夏候氏)였
는데 환관인 조등(曹騰)의 양자가 된다. 방탕한 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공부도 하지 않았지만, 총명이 매우 깊고
앉아 자신에게 불리한 일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해서 넘어가곤 했다. 유명한 관상가인 허소는 그를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奸雄亂世雄)' 이라 평하였는데 이때 이 말을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20세 때 효렴(孝廉)에 천거되어
출사하여 낙양 경비위를 맡았는데 그가 일하는 방식은 매우 엄격하였다. 그 후에 출세해서 기도위가 되었고, 사촌인
하후돈(夏侯惇), 하후연(夏侯淵)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황건적 토벌에 나서는데….
영웅들의 의거 (義擧)
촉 (蜀) - 도원결의 (桃園義盟)
탁군(涿郡) 탁현 사람으로 동한 황족의 먼 친척인 유비, 어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에
돗자리를 짜거나 짚신을 삼아 생계를 꾸려가며 어머니를 모셨다. 오로지 인내심을 길러 다니는 행상길에서
견문을 넓혔으며, 워낙 천성이 너그럽고 말 수가 적어 늘 사람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용모 또한
아주 특이하여 어디를 가든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유비는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군사를 일으켜 황건적 토벌에 나서는데…. 비록 셋은 성은 다르다 할지라도 이미 의형제가
되었으니, 한 마음을 한 뜻으로 힘을 합쳐 한왕조를 구원하고 위태로움을 도우며,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만인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께서는 이 뜻을 굽어 살피소서, 만일 우리들 중에 의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여 주소서!
영웅들의 의거 (義擧)
오 (吳) - 강동의 호랑이
병법가인 손무자(孫武子)의 후손으로 17세 때 전당에서 수십 명의 해적을 퇴치하여 이름을 날렸다.
그 후에 관리가 되어 회계군에서 반란을 일으킨 허창 부자를 토벌하기 위해 나서서 민병 천여 명을 모아
관군과 함께 반란을 진압하였다. 그 공적으로 염독군 승이 되었고, 그 후에 각지의 승을 역임하였다.
이마가 넓고 얼굴은 컸으며 체격은 호랑이 같았고, 몸통은 곰과 같이 우람했다고 한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회수와 사수의 정예병들을 이끌고 황건적 토벌에 나섰는데…
기울어져 가는 한황실을 다시 일으킬 영웅들과 뜻을
함께 할 자들은 어디에…
맏이인 장각은 어려서부터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과거에는 낙방하고 말았다.
어느 날 약초를 캐려고 산 속을 헤매다가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짚은 남화노선(南華老仙)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장각에게 '태평요술서'라는 책을 주면서, '이 책을 잘 읽고
익혀 세상을 구하고 도를 개척하여 선을 베풀어라' 하고 당부했다.
그날 이후 장각은 그 책을 탐독하였는데, 일설에 의하면 비를 부르고 바람을 일으키는 술법까지 깨쳤다고 한다.
때마침 전염병들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장각을 우두머리로 하는 태평교는 장각을 주술하고 부처나 영수(靈水)를 마시게 하여 병을 고친다는
요법으로 민심을 모아 태평도를 일으켰다.
'인간의 질병과 고통의 원인은 그 사람의 죄에 있다. 과거에 지은 죄과를 고백하고 참회해야 하며, 신비한 힘을 빌어 씻은 물과 부적을 사용하여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장각은 대현량사(大賢良師)라 자칭하고, 제자를 각지에 파견하여 수십만에 달하는 대중을 조직화한 후,
한왕조(漢王朝) 타도를 목표로 거병하였다. 반란군은 황조의 출현을 표현하는 황색천을 매고 있었으니, 이를 ‘황건(黃巾)의 난’ 이라 불렀다
장각은 자신을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 칭했으며, 그의 두 동생 장보는 지공장군(地公將軍), 장량은 인공장군(人公將軍)이라 칭하여 농민을 규합하였다.
이에 각 영웅들은 흩어져 있는 인재들을 등용, 황건적 토벌에 나서는데….
난세(亂世)의 막이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숨겨진 뛰어난 장수들
위 (魏) - 장료 (張遼) 문원 (文遠)
위나라 말기 형주 자사였던 정원은 장료의 용맹스러움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종사로 임명하여
병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부임하게 하였다. 재상 하진의 명령으로 하북에 가서 병사 1천여명을 손에
넣어 귀환하였으나 하진이 환관에게 암살되자 동탁의 산하에 들어간다. 동탁이 죽은 이후, 여포의 장수가
되어 기도위로 승격하였다 여포가 이끌게 된 여지나 여와 함께 서주로 도망쳤다. 여포가 죽었을 당시
부대장으로 싸우다가 조조군에 의해 생포되었으나 관우가 구명을 청해 조조의 신하가 되는데…
숨겨진 뛰어난 장수들
촉 (蜀) – 조운 (趙雲) 자룡 (子龍)
조운은 처음 원소에 밑에서 일할 생각을 했었으나 원소의 사람됨을 알고는 포기했다. 그 후 반하
전투 때 원소 휘하의 대장인 문추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처해 있던 공손찬 군을 구하고 그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공손찬의 휘하장수로 있었으나, 당시 객장으로 있던 유비를 만난 후 ‘이 사람이야 말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모셔야 할 주군’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유비에게 “언젠가 다시 만날 때가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공손찬 밑으로 되돌아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공손찬이 원소의 손에 멸망하자
조운은 유비를 찾아 방랑을 계속한다.
숨겨진 뛰어난 장수들
오 (吳) – 태사자 (太史慈) 자의 (子義)
담력과 식견이 보통 사람을 능가하였으며 날쌔고 용감하여 전투에 능했다. 북해태수 공융을 도와
황건잔당 관해와 그 일당을 물리치고 유비에게 연락하여 도겸을 돕게 하여주고는 후에 양주지사 유요를 따랐다.
그곳에서 손책의 침공을 받아 그와 단기로 맞서 싸웠으나 손책은 그의 용맹을 높이사고
그를 깍듯한 예우로 맞이하자 이에 그는 충성으로 화답하게 되는데….
숨어있는 인재들
위 (魏) – 사마의 (司馬懿) 중달 (仲達)
사마의는 본래 명문가 출신으로 그의 부친은 경조윤이라 하는 높은 벼슬을 지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그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순욱의 추천에
따라 사마의를 초빙하지만 사마의는 병을 핑계삼아 응하지 않았다. 7년 뒤, 승상이 된 조조는
세 차례나 사람을 보내 사마의를 초빙하지만 이번에도 사마의는 응하지 않았다. 이에 조조는
사마의의 몸을 묶어서라도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제서야 사마의는 조조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는데….
숨어있는 인재들
촉 (蜀) - 제갈량 (諸葛亮) 공명 (孔明)
공명은 등현에 살고 있었다. 양양성에서 20리 떨어진 융중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융중에서의 생활은 말 그대로 청경우독을 하는 나날이었는데,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항상 은자의 삶을 노래한 양부음을 애칭하며 지냈다. 공명의 학우인 서서는 유비 밑에서
일하며 신야, 번성에서 조조의 군대를 물리쳤으나, 모친이 조조에게 인질로 잡혀 어쩔 수 없이
유비 곁을 떠나게 된다. 서서는 “와룡이나 봉추 중 어느 한 쪽을 군사로 삼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했고,
이는 와룡은 제갈량, 봉추는 방통의 별명이었다. 떠나기 전 서서는 천하제일의 지략가 제갈량을
유비에게 천거하게 되고 삼고초려의 끝에 그는 유비의 군사가 되는데….
숨어있는 인재들
오 (吳) - 육손 (陸遜) 백언 (伯言)
육손의 별명은 ‘육의’였으며, 집안은 대대로 강동의 호족이었으며, ‘육씨문서’에 의하면
육손의 조부가 되는 ‘육우’는 총명하고 품행이 단정하여 성문교위에 임명 되었다.
그의 아버지 ‘육준’은 덕이 깊은 인물로 도위까지 승진하였다. 육손은 젊은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인 여강태수 육강 곁에서 지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원술이 육강을 공격해 왔을 때 육강은
육손을 모든 친족과 함께 오로 돌려 보낸다. 젊은 나이의 육손은 손권 밑에서 일하게 되는데….
흑산적의 난
황건적의 난이 진압 되었으나 곳곳에서는 황건적 잔당의 무리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그 중 황건적 잔당의 세력은 통합하여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무리도 있었으니, 그 세력의
우두머리는 ‘장연’이라는 자였다. 그들의 군세는 백만에 달했고, 진양지역 및 인근 상상,
중산, 상당, 하내의 여러 산과 계곡의 산적들과도 내통하였으니, 손경, 황당 등 각자의 부하를
이끌고 장연을 따르는 등 눈에 띄는 반란 세력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흑산적이라 부르며 이를 두려워하게 된다.
두려워 하는 백성을 위해 유요, 공융, 장양 등 지방 관료들이 흑산적 토벌과 우두머리 장연의 숙청을 조정에 요청하게 되는데….
기울어져 가는 한황실을 다시 일으킬 영웅들과 뜻을 함께할 자들은 대체 어디에…
같은 시기 하진은 환관 세력을 몰아내고자 원소, 동탁과 결탁하였으나, 하태후는 하진의 계획에 반대 하였다.
그러던 사이 하진의 계획을 알아차린 환관세력은 하진 가문을 몰살시키는데, 이를 가리켜 당시 가장 유력했던 환관
10명이 주도한 난, 십상시의 난이라 한다. 이에 분개한 원소는 궁성에 진입하여 환관 천여명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고,
동탁도 낙양에 대규모 출병을 시켜 권력을 장악한 뒤, 소제를 폐위 시키고 헌제를 옹립했다.
소제의 폐위 문제에서 동탁과 의견이 맞지 않았던 원소는 고향으로 돌아가 군대를 모집하고 각지의 유력 인사들에게
동탁토벌을 요청, 결과적으로 반동탁 연합이 결성된다.
원소가 주도한 토벌군에 조조, 유비, 손견 등의 군웅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황제를 옹립하여 폭정을 휘두르는 동탁에게 후한의 영웅호걸들이 한데 뭉쳐 도전한다!
사수관 싸움
반동탁군은 낙양 방어선의 요충지인 사수관에 진을 친다. 총 20만, 진영은 2백리나 되었다고 한다.
동탁은 화웅을 대장으로 이들과 맞서게 한다. 반동탁군의 선봉 손견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선전한다.
손견의 휘하 장수 정보가 화웅의 부장 호진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린다. 그러나 손견군의 피해도 적지 않아
일시적인 후퇴를 피하긴 어려웠다. 손견은 진영을 정비하면서 부족한 군량 보급을 재촉하였으나, 원술이
말을 듣지 않아 오히려 화웅군에게 패퇴한다. 손견 패주 이후 반동탁군은 이름있는 장수를 연달아 출정시키지만
모두 화웅에게 당하게 된다. 사기가 꺾인 반동탁군은 본진까지 위협을 하자 어찌할 방도를 몰라 심하게 동요하게 되었다.
호로관 전투
범수관을 빼앗은 반동탁군은 여포가 지키는 호로관에 진격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여포는 듣던 대로 홀로 만명을 당해내는 장수였다. 반동탁군의 장수는 그 누구라도
순식간에 당해버리기 일수였다.
각지의 영걸이 전부 모였다는 반동탁군 가운데서 여포를 당해낼 자는 정녕 없다는 말인가?
반동탁군은 총력을 기울여 호로관을 몇차례나 공격하였으나, 끝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다.
여포가 패퇴하는 것을 본 동탁은 낙양 성안 부호들의 재산을 약탈한 다음 성에 불을 지르고 장안으로 옮겨갔다.
황제인 헌제를 옹위한 이동이었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는 정식 천도가 된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헌제를 데리고 갔기에 안그래도 멀어진 민심이 더욱더 동탁에게서 멀어지는 계기가 된다.
황건의 난에 이어 동탁에 의한 횡포로 사실상 한왕조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고,
마침내 군웅할거 시대의 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서기 194년 역적 동탁이 제거되었지만 나라는 계속 황폐해져 갔다. 헌제가 있었으나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각지에서는 주도권을 놓고 전투가 시작되었으며, 권세를 틀어쥔 자들은 백성을 못살게 굴었다. 연주에 있던 조조는
부친 조숭을 잃자 서주의 도겸을 공격하고 그 틈을 타 여포는 진류를 탈취했다.
유비는 조조에게 공격당한 도겸을 구원하기 위해 소패에 주둔하였으며 남에서는 손책이 주유와 함께 강동을 제패한다.
동탁을 타도하고자 뭉쳤던 영웅들은 이제 야망을 위해
중원의 패권 다툼을 시작하며, 마침내 군웅할거의 시대가 열린다.
조조, 패자의 길로
낙양 동쪽 팔백리, 조조는 동군의 태수로 흑산적의 잔당을 정리하며 병력을 키웠고 장수와 모사들을 등용하여
그 세력이 점차 확장되고 있었다. 이렇듯 세력을 키우던 조조는 천하 열세 개 주 가운데 하나인 연주를 얻게 되고,
연주목으로서 산동 일대에 다시금 나타난 황건적을 토벌하며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세력을 얻게 된다.
수십만의 군사와 훌륭한 모사, 그리고 무장까지 거느리게 된 조조는 서서히 자신의 야망을 키우게 된다.
이에 낭야 땅에 숨어 지내던 일가족의 안전을 위해 연주로 부친 조숭을 비롯하여 일가족을 불러오던 중 도겸의 부장 장개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조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도겸이 다스리고 있는 서주를 공격하였으나,
근거지인 연주가 여포에게 공격을 당하여 군사를 물리게 된다. 연주를 회복한 조조는 연주를 근거지로 하여 힘을 기르니
그 세력이 점차 더 강해지고, 때마침 이각과 곽사의 난으로 궁핍해진 헌제는 조조를 낙양으로 불러들이고 조조는 자신의
모든 세력을 안고 낙양에 입성하여 이각과 곽사를 패퇴시킨다. 이에 헌제는 한층 조조를 믿고 의지하니
조정의 대권은 조조의 손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는 천하를 얻고 자 하는 조조의 야망에 날개를 달아주며, 위나라 건국의 초석이 된다.
유비, 의로 서주를 얻다
공손찬에게 의지하던 유비는 북해 태수 공융의 구원을 받아 관해가 이끄는 황건적을 무찌르게 된다.
이때 공융에게서 서주 도겸의 어려움을 전해 듣게 되며, 정과 의를 중시하는 유비는 도겸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공손찬에게 군사와 조자룡을 얻어 서주로 항하게 된다.
서주에 도착한 유비는 조조에게 화해의 사신을 보내게 되고, 때마침 조조의 본거지인 연주가 여포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어 조조는 유비의 화해를 받아들이고 군사를 돌려 연주로 돌아간다. 이 후, 도겸은 서주를
유비에게 맡기려 했으나 유비는 이를 거절하고 객으로 소패성에 머물게 된다.
그러던 중 도겸이 병이 들어 쇠약해져 재차 유비를 불러 서주를 맡아줄 것을 간곡히 청한 후 숨을 거둔다.
도겸이 죽은 후 서주의 패인을 사양하던 유비는 백성들의 간곡한 부탁과 두 아우의 권유로 드디어
서주의 패인을 거두어 서주성의 주인이 된다.
서주를 얻음은 훗날 촉나라를 세우는 유비가 공손찬이라는
작은 연못을 떠나 대양으로 내딛는 첫 발걸음이라 할 수가 있겠다.
손책, 강동을 평정하다
아버지 손견이 죽은 뒤 강남에 자리 잡은 손책은, 그 사람됨이 활달하고 한편으로 어진이를 예로 대우하며,
사람을 잘 부려 많은 백성들이 그를 따랐다. 서주목 도겸은 살아있을 때 이런 손책을 경계하며 매우 싫어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손책은 원술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윈술이 손책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손책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그러던 원술의 오만한 태도에 손책은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원술에게 군사를 빌려 강동으로 떠나니 옛 선친을 따르던 장수들과 의형제인 주유까지 스스로 찾아와
손책을 따르며 훗날을 도모하게 된다. 강동으로 이동하며 모여든 군세만으로도 이미 손책의 세력은
원술에게서 떠날 때의 배는 늘어있었다.
손책은 그 세력을 업고 유요를 공격하여 말릉성을 얻었으며, 더욱 몰아쳐 오군의 엄백호와
그를 도우려는 회계 태수 왕랑까지 멸하고 동쪽지방을 완전 평정하게 된다.
이 후 손책은 강남과 강동에 근거지를 늘리고 백성들을 보살피며 그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이미 손책은 세력의 중원의 군웅 그 누구에게 비해도 크게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해버렸다.
손견의 남다른 야망과 포부는 그 아들에 이르러 드디어 형체를 갖춰가고,
강동을 완전히 평정한 손책은 훗날 천하를 삼분할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